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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ory

'아빠 어디가'와 외국어 내성

블랑코FR 2013. 11. 28. 19:13

한국 티비를 잘 안 보는 내가 유일하게 챙겨보는 게 있다면 '아빠, 어디가'와 '진짜 사나이', 그리고 '개그콘서트'다.

지난주 방송을 봤더니 뉴질랜드로 여행을 갔더군. 준수 아빠가 영어로 조금 의사소통을 하더니 '토할 것 같다'고 했지.

그 장면을 보면서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프랑스에 살면서 불어를 듣고 말하며 산다. 불한 번역을 주로 하니까 하루 중 한국어를 사/용/하/는 비율이 그렇게 낮진 않은데, 듣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아닌 글자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좀 다르다고 해야할 거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불어로 시작해 불어로 끝난다. (남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야겠어...)

아침에 켜지는는 라디오 알람도 불어. 하루종일 번역하면서 보는 프랑스 방송.

남편과 자주 주고받는 불어 문자. 저녁이면 불어 뉴스. 자기 전까지 보는 영화도 불어 더빙...


불어 자체를 공부했던 어학 시기를 제외하고 불어를 일상어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가끔은 불어 인풋이 너무 과하면 부하가 걸리는 경험을 했다. 바로 저 토할 것 같은 기분. 


프랑스 생활 8년차이지만 오래 산다고 해도

따로 불어 공부를 하지 않으면 단어 수준이나 문법, 문장구사력 등의 실력은 크게 늘지 않는데

저 부하가 걸리는 역치가 높아지는 것 같다. 아니, 내성이 생기는 것일까.


한국어는 머릿속에서조차 써보지 못하고 하루종일 불어만 듣고 말하면

저녁쯤 되어 말 그대로 불어는 듣기도 싫은,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간혹 있었다. 

(과거에 공부 정말 열심히 할 때 ㅋㅋ)

그럴 때는 남편에게 불어는 말하기도 싫고 듣기도 싫으니 말 걸지 말라고 했다. 과열된 머리 식히기... ㅋ


그러나 지금은 과하게 인풋되어도 부하걸리는 일이 별로 없고 그냥 렉 걸리는 정도다. (재부팅이 필요해ㅋ)

토할 것 같지도 않고 스트레스에 식은 땀이 나는 것도 아닌데

컴퓨터 화면이 멈춘 것처럼 또는 느리게 반응하는 것처럼

단어가 생각이 안 나거나 어버버거린다. ㅎㅎㅎ 

(김성주 씨가 마트에서 직원에게 문의할 때 딱 어버버거린 정도!)

그럴 때는 그냥 머리를 쉬게 하는 게 최고다. 


예전에 고등학교 때 공부할 때면 라디오를 들으면서 했었다. 귀로 들으며 눈으로 보는 게 둘 다 가능했고

라디오 소리가 방해가 안 됐었는데 지금도 그건 거의 그렇다.


그런데 불어 티비나 라디오가 켜진 상태에서 한글로 된 책을 읽으려고 하면 못 읽는다.

불어가 자꾸 귀에 들어와서 책을 읽는 건지 마는 건지... 책 내용이 안 들어온다.

반대로 불어로 된 글을 읽는데 한국어 소리가 들리면 방해가 안 된다.

성인이 되어 체득한 외국어이고 몇 년간 집중하고 노력한 언어라

의도하지 않아도 주의가 집중되는 게 아닐까.

불어와 한국어의 이중 인풋에서 생존을 위해 나의 몸이 불어를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는, 뭐 그런 반응? ㅋㅋ

늙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치매에 걸려도 불어를 할까?


아... 외국에서 여생을 보내게 될지, 외국어를 사용하며 살게 될지 정말 꿈에도 몰랐는데 사람일은 참 알 수 없구나.


한줄요약. 프랑스에 살려면 불어는 정말 꼭 해야 한다... 렉 걸릴 때는 쉬는 게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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