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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보내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 고속도로 화물차 운행이 금지되어 비교적 편하게 운전할 수 있는 일요일날 떠나기로 했다. 그리고 주말이지만 토요일에 비해선 많이 한산한 편이다. (대부분의 캠핑장이나 바캉스 시설들이 토요일부터 일주일 단위로 예약되기 때문에 휴가철에 토요일 고속도로는 정체가 심하다)

보통 프로방스 지방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고속도로) A6, A7을 타고 내려가게 되는데, 리옹을 지나 시작되는 A7은 정체구간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과속탐지기들도 많아서 출발하기 전 GPS에 과속탐지기 위치 업뎃은 필수다. 또 휴가철에는 매연방지를 한답시고 규정속도 시속 130km를 낮춰서 시속 110km로 달려야 한다. (프로방스 지방이 공기 오염도가 가장 심각한 지역이라고 한다.) 톨게이트 비용은 또 오지게 비싸고...

그래서 Tip. 아를이나 님, 아비뇽, 엑상 프로방스로 가는게 아니라 칸, 니스로 가는 여행자들이라면 리옹을 통과하지 말고 (정체 완전 심하다) 외곽으로 돌아 그르노블을 통해 가는 게 훨씬 스트레스를 덜 받는 길이다. 게다가 죽기전에 꼭 한번 해봐야 한다는 세계 최고 자동차 여행 코스중 하나로 유명한 나폴레옹 루트를 통과해 갈수 있다.

Bourgoin-Jallieu와 Golfe-Juan(후앙만) 사이의 85번 국도(La route nationale 85, RN 85로 표기)에서 그르노블과 후앙만 사이의 길을 나폴레옹 루트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나폴레옹이 (정확히하면 나폴레옹 1세) 엘바 섬을 탈출해 파리로 가기 위해 택한 루트이며 이 사건이 백일천하의 시초가 되기 때문이다.

녹색 박스로 표시된 부분이 나폴레옹 루트를 따라 위치한 도시들이다. 지도는 http://www.viamichelin.fr에서 펌.



엘바섬에 유배된 나폴레옹이 당시 그 곳을 지키고 있던 영국의 고등판무관이 이탈리아 본토에 볼 일을 보러 간 사이에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유일한 범선에 올라 탈출하여 프레쥐와 앙티브사이의 후앙만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1815년 3월 1일) 당시 프로방스 지방은 왕당파의 세력이 강해서 론강을 통해 파리로 입성하는 것이 어려워서 1200명의 군사를 이끌고 그라스, 디뉴, 시스트롱, 그르노블을 따라 알프스 산길을 넘는 편을 택했다. 그리고 워털루 전쟁에서 참패할 때까지 100일 천하를 누렸고...

324km에 해당하는 길을 6일 만에 통과해서 3월 20일에 튈르리 궁에 입성했다고 하니.. 얼마나 고생했을지 짐작이 간다. 당시 그라스와 디뉴 사이엔 아직 길이 닦여있지 않아 sentiers muletiers(노새만이 다닐수 있는 좁고 가파른 길)을 통해 걸었다고 한다.

(이 길을 어떤지 맛보고 싶다면 영화 '미스터 빈의 홀리데이'와 다니엘 오떼유, 모니카 벨루치 주연의 'Napoléon (et moi)' (한국제목, 나폴레옹의 연인)를 보면 되겠다. 특히 후자의 경우 나폴레옹이 엘바섬에 유배되면서 시작하는 영화라.. 나폴레옹이 N85를 따라 파리로 가는 얘기가 나온다)


우리는 남쪽으로 내려가는 입장이었으므로 나폴레옹이 걸었던 길과는 반대반향에서 출발한 셈이다. 원래 우리의 루트는 그르노블을 지나 N75를 따라 시스트롱까지 가는 것인데 이번에는 특별히 나폴레옹 루트 구경을 하기 위해 N85로 루트를 수정하고 출발했다. 그러나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ㅠㅠ

그르노블을 벗어나자마자 얼마 안가 Laffrey라는 마을이 나온다. 이 곳에는 스탕달이 « prairie de la Rencontre » 라고 명명한 곳이 나오는데, 바로 나폴레옹이 그를 체포하기 루이 18세가 보낸 왕당파 군사들과 맞딱뜨린 곳이다.

1500m만 가면 나온다고 알려주고 있으나 길은 막히고...



그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5대대 군사들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며 외쳤다고 한다. « Soldats du 5e de Ligne, je suis votre Empereur, reconnaissez-moi ! (병사들이여! 나는 그대들의 황제다! 나를 기억하라!)», 그리고 두려워서 얼굴이 새하얘진 병사들 앞에, 또다시 한걸음 앞으로 다가가 « S'il est parmi vous un soldat qui veuille tuer son Empereur, me voici. (그대들 중에 자신의 황제를 죽이고 싶은 자가 있다면, 나서라. 내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자 군사들은 무기를 떨어뜨리고 울면서 나폴레옹을 따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완전히 정체되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언덕이 계속되는 곳에서 차가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니.. 도대체 무슨일인가 싶었다. 반대편 차들은 쌩쌩 달리는데 말이다. 중간중간에 차를 돌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도 차를 돌릴까..도 생각했지만 그르노블 빠져나오면서 길을 잘못 들어간걸 굳이 차를 돌려 여기까지 왔는데, 괜시리 대단한 풍경을 놓칠것 같은 생각에 상당히 찝찝해서... (이 나의 집착증..) 기다렸다.

날은 더운데 언덕길에서 1-2미터 달렸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니, 남편이 그런다. 이런 환경이면 모터가 과열되서 차 고장나기 쉽다고... 우리처럼 가벼운 차들은 괜찮지만, 캠핑카나 밴처럼 등치가 큰 차들이 이런 더위에 언덕길을 바로 올라가지 못하고 자주 멈추게 되면 엔진 과열로 멈춰버린다고 말이다. 차를 잘 모르는 나는 그렇군..하며 듣고 있었는데 조금 올라가니 정말 고장나서 멈춘 캠핑카 한대가 보였다. 또 올라가니 이번에는 승용차 한대가... 다시 올라가니 또다른 캠핑카 한대가... 총 3대가 고장나 길을 막고 있었다. ㅠㅠ

이게 정체의 원인인가 싶었지만 여전히 정체는 계속되고 있었으니 원인은 아녔다. 2차로라.. 견인차를 부르기도 쉽지 않고 일요일이라 언제 올지도 모르고.. 얼마나 난감할까 싶었다. 결국 Laffrey마을로 들어갔더니 정체의 원인은 신호등이었다... ㅠㅠ 2차로인데다 마을 한가운데 교차로에 로터리가 아닌 신호등을 설치해놔서 마을밖에서부터 정체가 되게 한 거였다. 나중에 집에와서 찾아보니, 이곳 언덕이 꽤 경사도가 있어 조심하라는... 경고문이.. ㅠㅠ

창밖 풍경...



그러다가 La Mure와 Corps 사이 호수가 있는 곳이 보여 잠시 멈추기로 했다. 지나가다 보면 표지판이 보이는데 La Mure에는 다리를 가로 지르는 꼬마 기차가 유명하다 하고, Corps에는 번지점프를 할만한 곳이있다고 함. 그치만 간간히 보이는 호수 외에는 그다지 볼거리가.. ㅠㅠ


le lac du Sautet 이 지방 호수들은 다 색깔이 터키옥색이다.





솔직히 굉장한 풍경을 기대했는데 우리가 자주 달리는 N75보다 못한 풍경이라 실망했다. 더구나 지나가는 마을들도 별로 볼 것 없고 다들 나폴레옹 루트라는거 외에는 관광자원이 없는지... 곳곳에 나폴레옹 루트라고 표시한 이정표나 동상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정말 황량한 마을들 뿐이었다.

고양이 한마리 없는 마을. (우리는 쥐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반면, 프랑스에선 고양이 한마리 없다고 한다)


그래도 뭔가 나오겠지... 계속 기대를 가지고 달렸건만...

미련하게 차를 들이박는 벌레들 때문에 차 유리만 더러워지고...



그냥 나폴레옹이 다녀간 곳이라는 기념탑들만 세워져 있을뿐...

Saint-Bonnet en Champsaur에 있는 기념탑. 1815년 3월 6일 엘바섬에서 출발한 나폴레옹이 멈췄던 곳이라고...



1,248m의 Col Bayard를 지나 Gap으로 들어갔다. 이 근방에서는 꽤 큰 도시라 볼거리가 있기를 기대하며 말이다.

Gap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독수리 상.



그런데.. 진짜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Gap 외곽이 아닌 시내를 통과하도록 되어 있어 길을 따라 갔는데.. 모던한 것도 아닌, 옛스럽지도 않은 어정쩡한 못생긴 아파트 천지라니.. 솔직히 이렇게 볼거리 없는 곳은 처음. 멈추고 싶은 생각도 안들고.. 별로 살고 싶지 않은 도시였다. 근처에 몇개의 스키장이 있는걸 빼고는 정말 매력하나 없는 도시.

Gap을 지나 곧 Sisteron(시스트롱)에 도착. 원래는 칸까지, 아니면 적어도 Digne-les-Bains까지는 나폴레옹 루트를 달리고 싶었지만, 우리의 목적지에서 많이 돌아가는 길이 되기도 하고 이전에 이미 Castellane(카스텔란)까지 간적이 있기 때문에 시스트롱에서 끝내기로 했다.

[추천 루트]
나폴레옹 루트라고 하더라고 시스트롱 까지는 N75가 훨씬 나은 경치를 보여준다. 그르노블에서 Vif 까지는 고속도로가 있어서 시간도 단축되고 N75의 도로 상태가 N85보다 양호하고 교통 흐름도 좋다. 그러므로 그르노블에서 시스트롱까지 N75를 따라간 뒤, 그 다음부터 나폴레옹 루트를 택하는 걸 추천함.

사실 꼭 해봐야 할, 현기증이 날만큼 아찔한 자동차 여행 코스도 시스트롱에서 카스텔란까지의 루트를 말하는거지, 그 전에 나오는 길들은 깎아지른 벼랑 따위는 나오지도 않는다. 그러니 왠만하면, Laffrey를 지나는 코스는 피하길.

시스트롱에서 카스텔란까지 길은 대략 이렇다는...


P/S 첨엔 나폴레옹 루트 위의 기념탑, 표지판, 동상마다 사진을 찍어 기념으로 남기려 했지만, 날도 덥고, 이미 오랜 시간을 차에서 보낸데다, 예상외의 정체, 절경을 못본 실망감, 그리고 시스트롱 구경을 해떨어지기 전에 해야겠다는 생각에.. 의욕이 떨어져서 그냥 눈으로만 보고 말았다. 그냥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되지. ㅋ

관심자들은 아래 사이트 꼭 방문해 보삼.
http://www.routenapoleon.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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