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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윈님의 댓글과 트랙백을 보고 생각난... 벌써 몇년은 된.. 잊어버리고 있었던 기차에서의 그 만남이 생각났다. 망할녀석... 지금 잘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ㅋㅋ

그 당시 난 프랑스에 유학 온지 5개월 된, 아직 프랑스 문화를 잘 모르는 순진한 츠자였다... 길고 긴 3개월의 여름 방학을 맞아 할일도 없던 차...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한 프랑스 가정의 초대를 받아 내가 사는 곳에서 파리를 중심으로 완전 반대편에 있던 그 도시까지 혼자서 멀고 먼 기차 여행을 했더랬다.

왕복으로 4번은 기차를 타야했기에 기차에서 혹 멋진 누군가를 만나지 않을까... 들뜨기도 했었다. 가는 길에 두번 탔던 기차에선 할머니나 아줌마가 내 이웃이었기에 돌아오는 길에 혹시나.. 다시 기대감으로 무장한 나. 

파리로 가는 TGV에서 기차표에 적힌 번호를 보고 내 자리를 찾았을때, 분명 내 자리는 창가 자리인데 누군가가 벌써 와서 외투를 걸쳐놓은게 보였다. 뭐야.. 하며 자리에 앉아 주인이 올때까지 기다렸는데... 내 옆자리에 앉으며 미안하다며 외투를 치운 그 인간은... 정말 혹할 정도로 잘 생긴 녀석이었다. 

두근두근 대는 가슴을 진정 시키고.. 무관심한 듯 MP3 Player를 꺼내 음악을 들었다. 대충 2시간이면 파리에 도착하니.. 뭔가 얘기를 주고 받아야 할텐데.. 생각은 했지만 내가 먼저 말을 걸기엔 난 너무 수줍었고.. (-_-) 그 녀석도 나를 흘끔 흘끔 보며 말을 걸고 싶은 눈치지만... 대화없이 파리에 기차가 도착하기를 십여분 남긴 그때... 

이 자슥아, 기차가 역에 도착하고 있자나.. 말을 걸란 말이닷!!


외국인과 대화를 할때 의례 묻듯이 어디서 왔는지, 뭐하러 프랑스에 왔는지 묻는 훈남.. 그 질문에 답하는걸 시작으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파리에 산다던 그 도시와 파리를 왔다갔다 하며 사업을 한다던 내 나이 또래의 그 훈남은 나에게 연락처를 주었다. 파리에 다시 오게되면 꼭 연락하라고. 오늘은 플랫폼에서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빨리 내려야 하기 때문에 아쉽지만 나중에 파리오면 꼭 연락하라고...
 
근데 왼손 넷째 손가락에 보이는 반지.. 뭐냐고 묻자 원래 오른손에 껴야 하는데 손가락이 굵어져 맞지 않아 왼손에 낀거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는 여자친구가 없다고 했다. 그 당시 뭘 몰랐던 나는 그런줄 알았었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가 사는 도시에 도착한 나는 문자를 보냈고 그도 답장을 했다. 그렇게 하루에 한두번씩 문자로 얘기를 나누었고.. 친구들에게 내가 만난 훈남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었다. 그중 프랑스 남자친구가 있었던 한 친구가.. 이상하다고.. 남자가 결혼한 사람이 아니라면 왼손에 반지 잘 안끼는데.. 반지 모양이 어떻냐고 묻는거였다. 설마 유부남인거야? 그럴리는 없을텐데... 실망스러웠다.


프랑스 서부 지역을 가기 위한 출발지인 몽빠르나스 역



그 이후.. 한달뒤에 파리로 이사가는 한 언니를 따라 이사도 도와주고 파리가서 같이 놀 요량으로 며칠간 파리에 있게 되었다. 떠나기 전, 기대반 의심반으로 몇차례 그 녀석과 문자를 주고 받았는데.. 내가 파리에 있는 기간동안 자기는 파리에 없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아니라고 만날 수 있다고 했다가.. 내가 머물데가 없다고 거짓말을 하며 문자를 보냈더니 자기네 집에 지금 누가 있어 안된다고.. 횡설수설... 의심이 사실로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문자도 씹고 전화번호도 지워버렸다.

지금의 신랑을 만나고.. 결혼도 한 지금 그 망할 녀석을 떠올려 보면... 자신의 외모가 어느정도 먹힌다는걸 아는 넘이었고 그걸 활용할줄 아는 인간이었다. 그 당시 반지나 그 넘 행동을 떠올려 볼때.. 아이도 하나 있을법한 결혼한 넘이었다. 서로 맘에 든 눈치라 같이 기차에서 내려 좀 걸을법도 한데...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플랫폼에서 그넘을 기다린건 여자친구나 아내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들킬까봐 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들고 도착하자마자 내린게 아닐까..싶다. 순진한 아시아 여자애... 색다르니 싱글이라고 거짓말한 망할 넘... 니가 그러고 댕기는게 니 마누라가 아냐.. 묻고 싶다. ㅋ

그 망할 넘이 문득 생각난 오늘... 아직 잘 살고 있을지, 그러고 댕기는거 들켜서 이혼은 안했을런지... 

뭔 일 있은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망할 넘.. 욕하고 싶은건 내게 처음 일어났던 가슴 두근거리는 기차안에서의 만남이었기에.. 그렇게까지 두근대고 마음 쏟은게 아까워서 그런다. 젠장... 그 이후로... 기차나 비행기에서의 만남은 별 기대를 안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신랑을 만나 연애를 하다가.. 방학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를 한번 탔는데... 세상에!! 기차 한칸 전체에 젊은 녀석들이, 그것도 키도 훤칠하고 말끔한 녀석들과 내가 탄 것이었다!! (한 칸에 두명씩 앉을 수 있는 좌석 4개, 즉 8명이 앉을 수 있는 칸이었는데!)

지금의 신랑은 이별의 슬픔으로 인해 굳은 얼굴로 창밖에서 손을 흔드는데... 난 훈남들이 내뿜는 훈훈한 에너지에 즐거워 별로 슬프지 않았던 그 첫 이별을.. 난 아직까지도 비밀로 간직하고 있다. 사실 그때 별로 슬프지 않았어.. 눈이 즐거웠거든.. 물론 싱글이 아니었기에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지만 ㅋㅋ


p/s 민짜 반지.. 흔히 얘기하는 웨딩밴드.. 를 왼손 넷째 손가락에 끼고 있다면... 결혼한 남자입니다. 그리고 오른손이라 하더라도 남자가 반지를 끼고 있다면 여자친구가 있는게 아닌지 의심해 볼만 합니다. 왠만한 남자들은 반지 끼는걸 싫어하고 전체적인 외모에 어울리는 반지가 아니라 - 이를테면 록커 차림에 해골반지... 흰구두에 양복 차림에 한가운데 유색 보석이 굵게 박힌 금반지, 주로 중년 남성들이 많죠 - 평범한 차림에 보석 없는 링반지를 끼고 있다면 절대 싱글이 아니옵니다... 혹, 몰래 반지를 뺀 녀석이라면.. 여름이라면 반지 자국을 빼고 손이 햇볕에 그을렸을테니.. 유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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