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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ory/스위스생활

집 이야기

블랑코FR 2018. 5. 31. 18:24

작년에 이사할 때 1년 만에 또 이사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마 또 이사할 걸 알았다면 예전 집을 팔았을 거다.

그치만... 아마 알았어도 쉽게 매매를 결정하진 못했을 것 같다. 지금은 옛집에 대한 정이 많이 옅어져서 당장 팔아도 아쉽지 않은 상태지만 작년에는... 아마 못 판다고 했을 거다.

우리 결혼 생활을 시작한 집이라 추억이 많고, 주택(프랑스에서 말하는 메종)이어서 집 내부, 정원 하나하나 우리 손길이 가지 않은 곳이 없어서 그 집을 떠나는 것도 많이 힘들었었더랬다. 1년이 지나서야 그 집에서 독립하는 게 정신적으로 준비가 됐달까.

그 집을 팔 수가 없어 그냥 두고 작년부터 쭈욱 1년 동안 월세를 살았다. 그리고 2번이나 이사했었다. 주택에 오래 살다 보니 아파트가 어떤 건지 잊어버린데다 몇 달 나갈 월세가 아깝다고 큰 집 필요 없다, 미니멀리즘하자며 주방 공간은 분리되어 있고 가구 다 갖춰진 빌트인 원룸을 구했었다. 마지막 층도 아니고 새 아파트도 아니고 7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였다. 도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주차장이라 주차장 있고 볕 잘 들고 최근에 리모델링해서 가구들과 주방 상태가 깨끗해 오케이 했었는데... 처음 3달은 좋았다. 동네 조용하고 집도 조용하고 따뜻하고... 

그런데 조용한 줄 알았던 이유는... 윗집, 옆집이 비었기 때문이었다. 윗집 이사오자 층간소음이 생겼고, 옆집에 망나니가 이사오면서 아파트가 쉬는 곳이 아닌 지옥으로 변했다. 70년대 아파트여도 아파트 앞 녹지 잘 가꿔지고 주변 조용해서 괜찮구나 했는데 옆집의 망나니 때문에 동네가 한순간으로 씨테(영세 가구들이 많이 사는 외곽 서민지구)처럼 변해버린거다. 낮엔 그렇다쳐도 밤에 소음 때문에 경찰 여러 번 부르고... 그 새끼 이사온 지 일주일 만에 이사 결정했다. 빌트인 아파트라 집주인에게 나간다고 통보하면 유예 기간이 1달이라 다행이었다. 

그렇게 다시 집을 구하면서 느낀 건... 나가는 월세가 아까워도 생활 수준, 소득에 맞는 집을 구해야 한다는 거였다.

이렇게 느낀 이유는... 당시 사람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였다. 우린 원룸을 임시 주거지로 정하고 (3달 이상 살 생각 없었음) 집을 사거나, 집을 짓거나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땅보러 다니고 여러 건축업체들 돌아다녔는데... 한 번은 건축업자가 우리 집에 와서 설명을 해준다고 했었다. 날이 좀 더웠었는데 방이 작아 더 더웠던 그날... 식탁에 앉아 우리에게 건축 설명을 하던 그 업자는 우리가 흥미를 보였음에도 더 이상 연락을 주지 않았다. 우리가 별로 돈이 없어 보였던 걸까. 대충 재정 상태를 설명해줬는데도 그런 상황에서 이런 아파트 사는 게 믿기지 않았던 걸까. 

옆집 망나니랑 시비가 붙은 상황에서 그 망나니도 우리한테 그랬었다. 이런 원룸 사냐고 어쩌구 저쩌구... 지는 봉고차에서 생활하다가 옆집 수리해주는 대가로 공짜로 사는 거라고 했다. 그때 절실히 느꼈다. 우린 둘뿐이고 몇 달 살 건데 원룸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게 굉장히 순진한 일이었다는 거. 재수없는 말인 건 알지만 사람들이 자기 아파트의 몇 가구가 영세 임대 주택으로 지정되어 소득이 낮은 가구가 들어오는 걸 반대하거나 싫어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달까. 아무튼 그날 이후로 우리 소득 수준에 맞는 아파트, 동네로 가야겠구나 했다.

그리고 이사갈 집을 찾아서 바로 이사했다. 그게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다. 여전히 우리 메종보단 작지만 원룸에 비하면 2배 이상 크다. 공간이 넓어지니 살 것 같더라. 또 남편 회사와 더 가까운데다 시골이라 조용하다. 대신 도심이 아니어서 빌트인 아파트가 없기 때문에 빈 아파트를 임대해 가구 채워넣느라 이사를 크게 해야 했다. 냉장고랑 세탁기는 새로 사야 했고. 

그런데 또 이사를 해야 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 우린 스위스로 이주할 계획조차 없었다 - 스위스로 길이 열려 살 집을 찾아야 했다. 집 구하는 거 쉽지 않다. 예산이 넉넉해도 좋은 집은 모두가 원하는 집일 경우가 많은데다 우린 아직 그 곳에 살고 있지 않으므로 광고를 보고 집을 찾아도 보러 갈 수가 없었다. ㅠㅠ

결국 다시 이사할 집을 찾으면서 작년에 집을 사거나 땅을 사서 집 지을 계획이 하나도 진행되지 못한 것에 감사하게 됐다. 만약 집을 사거나 집 짓기를 시작했다면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여러 건축업체들도 부동산들도 우리에게 연락하는데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오히려 지금은 고맙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집을 구했다. 이번에도 우린 순진했던 게... 우리 재정 상태가 이런데... 집주인이 거절할 수도 있으리란 건 생각지도 못했터라... 집 구하는데 난항을 겪으며 좀 우울했더랬다. 스위스가 프랑스에 비하면 노동법이 덜 빡세고 (즉 해고하는 게 쉬움) 월세가 높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periode d'essai 기간에는 임대를 안 해준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괜찮다 싶은 집을 보고 계약하겠다고 했을 때 집주인이 결정을 유보하길래... 다소 충격을 받았었다. 일단 서류 제출하라고, 집 보러 오겠다고 한 사람들 다 다녀가면 연락주겠다고... 하더라.

우리가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르고 들어갈지 말지 결정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터라... 우리가 선택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게 낯설고 충격이었다.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거 말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우리도 세입자 구할 때 골랐으니까 충분히 그 점을 고려해야 했었는데... 아직까지 그런 경험을 안 해본데다 우리 상황에 너무 자신했기 때문에... 며칠 동안 집주인의 결정을 기다리며 피가 마르는 심정까진 아니었지만 다소 의기소침했던 건 사실이다.



결국... 집주인에게 연락이 왔고 메일이나 문자보단 직접 알려주고 싶어 전화했단 말에 난 고맙다고 해버렸다 ㅋㅋㅋㅋ 우릴 택해줘서 고마워. 솔직히 연락 안 오면 정말 이상적인 세입자를 놓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우린 애도 없지, 흡연자도 아니지, 애완동물도 없지, 게다가 우린 집을 엄청 깨끗이 쓰거든. 월세 밀릴 일 없고. 나나 남편이나 조용한 걸 최고로 치는데다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들어갈 집은 지금 아파트보다 약간 작다. 그런데 월세가 2백만원이 넘는다. 젠장... 

방 두 개에 거실 하나, 지하에 차고가 따로 있는 새로 지은 빌트인 아파트다. 역시나 기준은 전용 주차장 또는 차고가 있을 것. 직장에서 가까울 것이었고 그게 충족되어 기쁘다. 그리고 새 아파트라서 새로 전화선 연결하는데 돈 드는 건 아깝지만... 가구도 집도 새거라... 좋다. 새집증후군은 조금 걱정되지만 말이다. 



집 구하고 지금 사는 집에 나가겠다고 통보한 터라... 빌트인 아파트가 아니어서 유예 기간이 3달이다. 3달 동안 이 아파트와 새로 구한 아파트 월세를 둘 다 내야 한다. ㅠㅠ 그래도 이사 마치고 며칠 쉬다가 남편이 출근할 수 있어 다행이고... 자리 잡히면 나도 다시 일 시작하고 싶다. 남편에 비하면 푼돈 버는 거지만 그래도 내 일이 있어 일하는 게 좋다. 직장이 구해질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ㅠㅠ



남편은 오늘 마지막 근무를 하고 집에 온다. 난 진작에 직장 그만 둬서.. 대략 한 달 반 정도 놀았다. 틈틈이 짐을 싸서 대부분의 짐들은 다 이삿짐 박스 안에 들어있다. 그치만 내일부터 엄청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사갈 집 전기, 인터넷 알아봐야 하고 또 우리 옛집(메종) 가서 손봐야 하고 그리고 드디어 이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난 건강검진 예약도 잡혀 있다. 제발 출근 1주일 전에는 모든 일이 끝나 일주일 동안 새로 이사간 동네를 남편과 함께 여유롭게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므로.... 잘 되길 바랄 뿐이다. 이 와중에 남편은 작년에 떠난 회사에서 보너스가 들어와가지고 ㅋㅋㅋ 한턱 쏘라고 그랬는데 이 넘이 요즘 돈 나갈 곳이 많으니 평일 점심 메뉴로 쏘겠다고 ㅋㅋㅋ 



진짜 처리해야 할 일들 태산이다. 수많은 집들 보면서 우리 집은 어디 있나, 왜 집구하는 게 이리 힘들까 서러웠던 적도 있는데... 그래도 우리 상황 생각하면 배부른 소리라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고 오랜만에 내 블로그에 푸념하고 간다.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 살았던 터라 월세 사는 게 낯설고 내 집 같지 않았는데 1년 해보니 적응이 된다. 지금 이사갈 집도 얼마나 살지 모르겠지만 정착해서 이쁘게 꾸미고 내 방, 내 작업실 만들고픈 생각이 크지만... 하... 이렇게 앞일을 알 수 없게 되다니... 당장 내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모험 인생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이런 상황이고 보니 딩크 결정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싶고. 암튼 암튼... 쏟아놓고 보니 시원하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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